[3편]
“재희씨, 나도 한 잔만.”
지들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자기들이 알아서 좀 갖다 먹던지 왜 들어오는 신입사원마다 저렇게 부려먹는지 모르겠다. 시키는 사람들도 워낙 많아서 블랙인지 밀크인지 헷갈릴 때도 종종 있는데, 어쩜 그렇게 눈치를 주던지. 집에서 취업 준비 할 때는 백수라고 눈치 보기 바빴고, 회사 들어오니 직장 동료들, 상사들 눈치 보기에 바쁘다. 내가 취업하고 나면 상황이 좀 나아 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입사 전 보다도 못 한 대우를 받는 기분이다. 힘들게 일 하고 들어가서 투정 부릴 사람이라고는 가족들뿐임에도 너무 힘들다고 한 마디라도 하면 ‘원래 다 그런 거야.’ 라는 말로 일단락 시켜버리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 오히려 집에서 내 말을 들어주는 건 우리 집 막내 ‘망둥이’ 뿐이다. 가끔은 말 못 하는 짐승이 사람보다 낫다니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집에 일찍 들여보내 준다기에 말 바꾸기 전에 얼른 지하철역으로 뛰어가,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역시나 날 반겨주는 건 우리 망둥이 뿐이다. 망둥이를 보자마자 번쩍 들어 올려 꼭 끌어안았다.
“망둥아, 누나 요즘 너무 힘들다. 넌 상사 눈치 안 봐도 되고, 오늘은 무슨 백을 들어야 되는지, 무슨 옷을 입어야 되는지 고민 안 해도 되서 좋겠다.” 만사가 귀찮았던 탓에 현관 앞에 그대로 쓰러져 자고 싶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망둥이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망둥이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그저 고개만 갸웃거리다 장난감을 물어와 나에게 놀자고 졸라대기 바빴다.
“나중에 놀아줄게, 나중에. 누나 오늘은 피곤하다.”
방에 들어가 가방은 구석에 던져두고, 옷부터 갈아입었다. 인터넷 쇼핑이나 할까 하고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책상위에 올려둔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피곤해 죽겠는데 누구야, 라는 생각으로 짜증을 내며 신경질 적으로 전화를 받으니 친구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
“아니, 그러니까. 진짜 어이없다니까? 아니 무슨 자기들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 물고 났나,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트집 잡을 거 없으니까 나중엔 내 가방 가지고 트집을 잡더라니까? 진짜. 그 여자들 한 달 월급의 반은 명품 백, 구두 사는 데 쓰일 걸. 카드 값이나 제대로 내지. 가끔 회사로 독촉 전화도 온다구. 진짜 짜증나.”
옆에서 삑삑 거리는 소리가 나 쳐다보니 망둥이가 그르렁 거리며 장난감을 물어뜯고 있는 망둥이가 보인다. 분명히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물고 있던 건 개 껌인 것 같았는데…. 내가 안 놀아줘서 삐쳤나. 놀아달라며 시위하듯 삑삑 거리는 소리를 내는 망둥이에게 미안해져 그제서야 길고 길었던 통화를 끝내고 망둥이를 쓰다듬었다.
“어이구, 내 새끼. 우리 망둥이. 누나가 안 놀아줘서 삐쳤쪄요?”
바닥에 누워 망둥이를 배위에 올려놓고 둥실둥실 거리니 그게 또 좋았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노래를 들으며 망둥이와 놀고 있으니, 오랜만에 듣는 노래가 흘러 나와 따라 불렀다. 학교 다닐 때가 생각이 났다. 수능 전에 힘들 때 마다 진짜 많이 들었던 노랜데….
망둥이와 한참을 놀고 있자니, 거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으라는 소리다. 망둥이를 안아들고 거실로 나가 망둥이 사료먼저 챙겨주고, 상 앞에 앉아 국을 한 술 뜨니, 엄마가 아빠도 아직 안 드셨는데 뭐하는 거냐며 타박을 주신다. 알았다며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빠가 거실로 나오실 때 까지 기다렸다. 그제 서야 식사가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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