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얼굴 마주보며 얘기라도 하고 싶었던 아줌마의 의도와는 달리 가족들은 모두 말이 없다. 국을 들이키는 소리, 가끔가다 젓가락들끼리 마주쳐 달그락 거리는 소리, 숟가락으로 밥 그릇을 닥닥 긁는 소리만 들린다. 조용했던 밥상위로 버석한 한 마디가 얹어졌다.
“아니 무슨 반찬이나 국이나 간이 안 맞아? 무슨 정신으로 밥을 한 거야? 밥은 질어가지고 이게 원 밥인지 떡인지….”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미안해요.”
“피곤? 피곤은 무슨. 집안일 하고, 학교 잠깐 갔다 오는 여자가 무슨.”
재희가 아줌마의 눈치를 살폈다.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냥 피곤해서 라고 하기에는 안색이 너무 좋지 않은데…. 뭐라고 좀 얘기라도 하지. 아저씨의 한 마디에 아무 말도 못 하는 아줌마가 답답해 보였는지 이번엔 재희가 나섰다.
“아빠는 왜 그래요? 항상 아빠만 힘든 줄 알죠? 언제 엄마나 우리 일에 신경이나 써 보신 적 있어요?”
옆에서 아줌마는 말리기에 바빠 보였다. 그만하라며 재희를 말렸지만, 오히려 재희는 그런 아줌마에게 좀 놔보라며 성화였다.
“지금도 그래요. 엄마 얼굴도 안 보여요? 다 죽어가는 사람 얼굴인데!”
할 말이 더 남은 것 같았으나,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했다. 맘 같아선 펑펑 울고 싶었으나 재희는 아저씨 앞에서는 울고 싶지는 않았나보다. 그런 재희를 보던 아저씨는 어이가 없고, 화가 났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재희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딱 그 짝 이구만? 지 엄마랑 똑같아서는. 너 어디 어른이 말씀 하시는데 따박따박…!”
“그만 해요!” 아줌마였다.
“솔직히 지금 재희 말 틀린 거 하나 없어요, 당신 회사 일 핑계로 집안 일 한 번 제대로 신경 써 본 적 있어요? 우리 재희, 재중이가 어떤지나 아냐구요! 당신 지금, 우리 재중이가, 어떤지나, 아냐구요.”
순간 소란 속에서도 묵묵히 밥만 먹고 있던 재중이 경직 된 표정으로 아줌마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아줌마가 무언가 알고 계신가 보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는 재중이를 뒤로 하고 아줌마가 말했다.
“우리 재중이가, 남자가 좋대요….”
재중이의 얼굴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로 향한 식구들의 시선을 차마 견딜 수가 없었는지 재중이는 아무 신발이나 꿰어 신고 무작정 현관을 열고 뛰어 나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족들은 바빠서 서로 제대로 얼굴을 볼 시간도 없을 텐데 엉망이 되어버렸다.. 드라마에서 저런 건 본 적이 없었는데….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저녁 식사 시간은 보통 즐거워 보였는데... 더군다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한테는 막 이것저것 좋아하는 반찬도 막 만들어서 주고 그러던데 왜 우리 가족들은 오랜만에 만났어도 이렇게나 싸우는 걸까? 아, 아니구나. 나에 비하면 오랜만인 것도 아닐텐데.. 나는 너무 어릴 때 부모님과 헤어져서 우리 엄마 냄새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또 우리 아빠도 나처럼 공놀이를 좋아하는지, 내 동생들도 나처럼 육포를 좋아하는지 기억도 안난다. 어쩌면 기억이 나지 않는게 아니라 너무 어릴 때 이 집으로 와 새로운 가족들을 만난 탓에 진짜 가족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걸지도 몰른다. 왜 지금의 가족들은 서로의 소중함을 모르는 걸까? 아무리 다른 누군가가 잘 해 줘봐야 정말 힘든 순간에 생각나는 건 가족일 텐데. 나도 진짜 힘들어서 우리 엄마가 보고 싶을 때가 있지만, 난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기억나질 않아서 떠 올리려고 할 때마다 더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우리 강아지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물론 나도 인정한다. 재희와 아줌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육포를 함부로 뜯어 먹을 수 없게 어디에 넣어둬야 하는 지도 알고, 재중이는 어떻게 하면 내 기분이 좋아지는 지도 안다. 아저씨는 내가 어떻게 하면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지도 알고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강아지인 나 보다도 멍청해 보일 때가 있다. 바로 지금 같은 때에 말이다. 왜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까? 왜 저렇게 함부로 대하는 걸까? 난 정말 우리 엄마, 아빠, 동생들….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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