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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4편)

북리뷰

by English helper 2020. 2.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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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듣기 싫어도 들려오는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연신 알았다는 말을 내뱉으며 이불 속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그 시끄러운 알람소리에도 깨지 않은 애들 아빠를 한 번 째려봐 주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먹었던 찌개를 한 번 데우고, 아이들을 깨우러 갔다.

재중아! 얼른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야지!”, “! 재희야! 너도 얼릉 인나! 회사 들어 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래? 너 만날 지각하면 회사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하디?” 엉덩이를 두들겨 대고 소리를 치고 나서야 비로소 꿈찔꿈찔 일어난다. 정신 없는 아침 준비가 끝나고 나도 바로 씻고 나가봐야 하기에 급히 서둘렀다. , . 우리 집 막내를 안 챙겼네.

망둥아, 엄마 갔다 올게.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해.”

내 직장은 집 앞 20분 거리에 위치한 재중이의 학교다. 대부분 학교가 직장이라 하면 선생님을 떠올리기 마련이겠지만 나는 급식실의 급식 아줌마이다. 물론 일은 힘들고 고되지만 재중이의 학교생활을 다른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좋은 직장이라 생각하고 있다. 점심시간인 12시 전 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하는데, 집에서 설거지며 빨래며 이것저것 하다보면 12시가 되는 건 금방이라 숨 돌릴 틈 없이 준비해야 겨우 맞출 수 있다.

오후 12. 배식을 하는데 저 멀리서 재중이의 얼굴이 보인다. 급식실에서 항상 마주치는 재중이를 보고 아는 척을 하지만 재중이는 항상 모른 척 할 뿐이다. 그래, 내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친구들에게 알려질까 창피해서 그런 거겠지? 처음엔 그런 재중이의 태도가 서운했었는데,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그저 멀리서 재중이의 학교 생활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사실 내가 굳이 학교 급식 아줌마로 일하게 된 이유는 재중이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말이 없어지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 영 불안하여 결국 이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어차피 물어봤자 답도 제대로 안 할 것 이고, 방 안에만 있는 애를 억지로 끌고 나올 수도 없을 것 같아 생각 해낸 방법이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낀 다른 한 가지는 몇 주 전부터 재중이가 혼자 다니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항상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도 떨어져 지내는 것 같다. 급식을 먹을 때도 항상 혼자 먹는다. 심지어 재중이가 앉은 식탁엔 아무도 앉지 않는다. 내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일까? 그러나 얼마 뒤, 나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왜 우리 재중이가 그런 일을 겪고 있는지 말이다.

, 너기 혼자 앉아서 먹는 애, 쟤가 글쎄 게이래! 대박이지 않냐? 나 게이 처음 봤어.” “게이라고? 우리학교에 게이가 있었어? 진짜 더럽다.”

그 얘기를 들었던 점심시간 이후 나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당분간은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우선은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다. 급식실에서 나와 집으로 가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차마 걸을 수조차 없었다. 결국 매점 옆 계단에 쪼그려 앉아 숨죽이며 울고 말았다. 엄마로써 신경 써 주지 못한 미안함과, 혼자 고민하고 있을 아들에 대한 연민, 또한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허탈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 한 채로,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게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모두 닫혀진 방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피곤한 정신에 침대에 누워 잠시 쉰다는 게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애들 아빠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식구들도 모두 모였으니 다 같이 마주앉아 얘기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에 밥 먹자는 핑계로 상 앞으로 식구들을 불러 앉혔다. “여보, 식사해요. 재희야, 재중아 나와서 밥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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